Moment of Truth

hollyest.egloos.com

방명록


통계 위젯 (화이트)

03
5
143009


2010.5.21 키베라(Kibera) travel



우리는 매일 식전에 기도를 했다. 식사 후 Elisha와 긴긴 이야기를 나눴다. 점심시간까지는 아직 좀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재원과 나는 물어보고 싶은 것을 죄다 물어봤는데도 이야기가 끝기지 않았다.

학교로 가서 점심시간을 체험 했다. 내가 사준 쌀에다가 완두콩 몇개를 더해서 그냥 먹었다.

맛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아이들이 앉는 지저분한 책상, 어두운 교실에서도 맛이 있었다. 아이들은 한줄로 서서 차례로 손을 닦았다. 근데 비누가 없었다. 나와 재원이가 손을 닦으려고 하자 선생님께서 비누를 가져다 주셨다. 비누를 쓰기가 왜 그렇게 부끄럽던지, 왜 아이들에게는 비누를 주지 않느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밥을 다 먹고 떠나려는데 선생님들이 자신의 이메일이라며 주소를 적어 줬다. 어제 내 말을 듣고 이메일 계정을 만들었는지 yahoo의 새로운 계정을 만들어 환영한다는 A4지를 그대로 프린트 했다. 그들의 성의에 너무 감사했고 그들이 이메일을 만드는데 들였던 노력과 시간을 생각하니 반드시 연락 해야 겠다는 사명감 마져 생겼다. 계속 내가 느끼는 것은 돈으로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하는 감사의 표시다.


Kivera라는 세계에서 3번째로 큰 slum으로 향했다. 가기 전에 아이들에게 줄 비스켓과 농축된 주스를 샀다(KES 517). 비스켓이 한 200개는 들어있었다.

정말 장난 아니다.

우리는 세곳을 방문했다. 첫번째로, 교회를 갔다. 교회에서는 예배를 하고 있었는지 어쨋는지 목사님과 신자들이 몇몇 있었다. Elisha가 스와힐리로 뭐라고 말하더니 우리에게 일어나서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하라고 했다. 난 갑작스러운 사태에 뭐라고 말할지 몰랐다. 일단 일어섰는데 나를 보고 있는 무표정한 얼굴과 그윽한 눈들에 대충 두서 없이 말을 하기는 했고 elisha가 번역을 해줬다.

곧이어서 mama가 돌보고 있다는 widow들을 만나러 갔다. 골목을 지나고 머리를 숙여야 하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느덧 한 방에 모여 있는 과부들과 애기들이 우리를 맞았다. community에서 일한다는 어떤 여자 분이 우리를 반기면서 오랫동안 우리를 기다렸다고 했다. 아마 엘리샤가 미리 말을 했으리라...

아이들은 우리에게 비스켓을 달라고 말하지도 못한다. 다만 내가 내민 비스켓을 꼭 쥐고 있다. 더 달라고 말하지도 안는다. 다만 내가 더 준 비스켓을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한 과부에게 내가 물어봤다. 애가 넷인데 어떻게 사냐고, 밥은 어떻게 먹이느냐고, 일은 하느냐고,,, 통역을 해주는 말을 듣고는 점점 과부의 눈망울이 흔들림을 감지한 나는 더이상 물어보면 안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결국 그 과부는 입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난 대충 대답을 들은 것 같았다. 그 방에는 아이들과 과부들만이 있었고, 그 작은 공간에 총 30명정도가 있었던 것 같다. 넘칠 만큼 과자와 주스를 나눠 주고 우리는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조금 더 먼 길이었다.

교회에서 돕는 학교로 찾아갔다. 아이들은 거의 다 고아 였다. 아까는 그래도 부모가 있는 편이었지만 이번에는 고아들의 학교다. 얼마전에 큰 비가 와서 학교가 그나마도 반토막이 났다. 아이들은 더 어렸다. 아이들은 더 눈이 컸다. 아이들의 배는 더 불룩해 있었다. 왜 배가 불룩하냐고 물었더니 밥을 못먹고 비타민이 부족하여 기생충이 살고 있어서 그런다고 엘리샤는 말해줬다.

한 아이의 배를 만져봤다. 그 아이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그저 내가 준 비스켓을 왼손으로는 꼭쥐고 오른손으로는 입으로 비스켓을 넣고 있었다. 그 애기의 눈망울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슬럼으로 나오는 길에 언덕 경치좋은곳에 부자들의 아파트가 있었다. 그들의 아파트로 들어가는 길은 깨끗히 포장되잇었고 큰 담에 둘러쌓여 있었다. 부익부 빈익빈의 처절한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온상이다. 오는 길에 동양인으로 보이는 봉고 차량 서너 대가 우리를 지나가는 것을 보고 물었다. 그들은 슬럼에 학교를 세운 중국사람들이였다. 그 학교는 학비 때문에 슬럼가의 사람들이 오는 것이 아니고 주변의 부자들이 학생으로 다니고 있다고 했다. 참나... 그럼 왜 슬럼왜 학교를 지은 건지...


우리를 escort해준 Kevin Nakali에게 Nike 팔지를 주었다. 내가 "너한테 연락 어떻게 해? 나중에 너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되?" 하고 물었더니, "난 항상 여기 있어"라고 대답하는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한마디를 잊을 수 없다.

집으로 돌아올 때도 우리는 택시를 타지 않고 현지 버스를 탔다. 버스는 정말 좁았다. 봉고를 개조해서 사람들이 다닥다닥 타게 만들었다. 천장도 낮아서 머리를 계속 수그리고 있어야 했다.

집에 와서 너무 피곤해서 저녁을 다 먹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먹기만 했다. 저녁은 특별히 생선을 내줬다고 강조했다. 이들에게는 이것이 특별한 것이다. 저녁 메뉴는 ugali, tilabia(fish), suk mawiki kachumbari(양상추와 섞은 것 같은 음식) 이었다. 손을 더운물로 씻고 나서 그냥 손으로 먹었다. 피곤하기도 하고 맛있기도 해서 우리는 조용히 저녁을 먹었다. 이날의 기억은 내 생에 가장 잊지 못할 충격으로 기억될 것이다. 



쓴돈 : 숙박비 1000 + 슬럼간식 517/2 ; 258 + 물5L 콜라2L 초코렛 2개 510/2 ; 255 + 버스비 = 1513 + 알파














 













덧글

  • 박승혜 2010/08/07 10:15 # 삭제 답글

    1주일전쯤 케냐를 가서 키베라를 방문했습니다 ㅎ
    우연히 검색해서 찾았는데, 너무 반갑네요 ㅜ

    생각도 나고.. 해서 퍼갑니다.
  • realist 2010/08/10 20:34 #

    와우 키베라 다녀오셨군요. 저도 너무 반갑네요 어떻게 다녀오셨는지 궁금하네요 ㅋ
댓글 입력 영역